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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땅의 고구려 마을 고마군(高麗群) HIT : 440


일본땅의 고구려 마을 고마군(高麗群)


2016.4.23일 히다카시 고마신사(高麗神社) 입구에 새로 새워진 1300주년 기념비를 고마약광회 하정용 사무국장이 히사코(久子) 여사에게 설명했다. 그녀는 아키히토 일왕의 사촌인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高円宮憲仁 1954∼2002)의 부인. 그 모습을 유흥수 주일대사, 일본의 하세 히로시 문부과학상 등 330여명의 참석자들이 지켜봤다

고마군은 716년에 약광(若光)이 초대 군장이 되어 세워졌다. 그는 고구려 마지막 임금 보장왕의 아들로 신라·당나라 연합군의 공격이 거세지자 666년 일본 야마토 조정에 파견한 사절이었다. 그러나 668년 고구려가 멸망하면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에 정착했다. 약광 같은 고대 한국인들은 일본에 선진 기술과 지식을 전수할 수 있는 귀중한 존재였다. 야마토 조정은 약광에게 왕씨 성을 주고 조정 관료로 일하게 하다 동국(東國·현재의 간토지방) 7개 지역에 살던 고구려인 1790명을 모아 설치한 고마군의 수장으로 삼았다. 미개발 지역을 개척한 약광은 큰 존경을 받았고 세상을 떠난 뒤에 설치된 고마신사에 모셔져 고마군의 수호신이 되었다.

고마군은 1000년 넘게 유지됐다. 하지만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 ‘반조선’ 분위기 속에서 폐지돼 이름만 유지하다가 1955년 행정구역명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이 과정에서 ‘고마’라는 성을 가진 주민은 이름을 바꿨고, 지명에서도 많이 사라졌다. 재일교포들이 중심이 된 고마약광회는 잊혀져가던 고마군과 약광을 공부해 되살려 보자는 취지로 2010년 6월 결성됐다. 고마군이 악화된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도 여겼다. 설립 당시 회원은 10명 정도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220명이 넘는다. 일본인들의 관심도 크다. 왕족들이 고마신사에 대해 알고 있고, 왕세자가 다녀가기도 했다. 왕실의 위상이 큰 나라인지라 정부와 현지언론의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이날 행사는 약광의 행적과 고마군 설치 내역 등을 담은 일본 역사서 ‘속일본기’의 내용을 새긴 기념비 제막식 후 이어진 양국의 전통공연으로 더욱 풍성했다. 태권도 시범, 하다카시 전통놀이가 펼쳐졌다. 재일교포들의 국악 공연은 행사장을 흥겹게 만들었다. 가야금, 태평소 연주가 끝나면 참석자들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연주 도중 히사코 여사는 머리를 가볍게 흔들며 리듬을 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주요 인사들의 덕담도 넘쳤다. 최근 몇 년간의 악화된 양국 관계를 되돌아보고 1300년 전의 역사가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평가했다. 약광회 박인작 회장은 “선진 기술로 황야를 개척한 고구려 도래인의 혼을 지켜가는 이곳이 성지로 빛나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유흥수 대사는 “지금까지 고구려 후손들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이 한국과 일본의 깊은 인연을 보여준다. 양국 관계가 악화된 적도 있었지만, 사이좋게 지낸 시간이 더 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세 문부과학상은 “이런 행사가 모여서 한국과 일본의 미래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화답했다. 히사코 여사는 주요 참석자들과 식사를 함께 하며 “1300년 역사의 깊이를 느꼈다. 양국 교류의 역사가 깊었다는 잘 모르고 살았는데 이번 행사를 계기로 알게 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행사를 후원한 동북아역사재단의 김호섭 이사장은 “한일 교류의 역사적인 흔적이 남아 있는 걸 보고 역사의 깊이를 새삼 느꼈다”며 “선조들의 교류를 우리가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도쿄·히다카=글·사진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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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일본 사이타마현 히다카시 고마신사에서 일본 내 고구려 마을인 ‘고마군’ 창설 1300주년을 기리는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고구려인 지역 개척사·삼족오 등 새겨
日 문부과학상·일왕 사촌 부인 참석
지도자 기린 신사·지명 등 흔적 여전
유흥수 주일대사 “두나라 교류 상징”


일본 내 고구려인 마을인 ‘고마군’(高麗郡) 창설 1300주년 기념비가 지난 23일 고마군이 위치한 사이타마현 히다카시에 세워졌다.

도쿄에서 2시간 거리인 히다카시의 ‘고마신사’에 세워진 기념비에는 “고구려 왕족인 약광의 지휘 아래 고구려인 1799명이 고마군을 세우고 이 지역을 개척했다” 등의 속일본서기의 내용과 고구려의 상징인 삼족오 등이 새겨졌다. 한·일 민간인 단체인 ‘고려 약광의 모임’ 주도로 이날 기념비 건립과 함께 고구려 전통 의상 재현식 등 행사가 열렸다.


고마는 한자로 고려로 고구려를 뜻한다. 속일본서기 등에 따르면 당시 사신으로 왔던 보장왕의 아들 약광 등 고구려인들이 당시 야마토 정권의 허락 아래 고구려 패망 후 지금의 도쿄 북쪽인 사이타마 지역에 고려인들의 지역이란 뜻인 고마군을 716년에 세웠다. 지도자인 약광이 죽자 신사를 세웠는데 그것이 고마신사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마군은 처음 생긴 뒤부터 1955년 행정구역명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 까지 유지됐다. 이 지역은 고구려의 하천이란 뜻인 고마가와(高麗川) 등의 지명이 유지되고 있다.

지역의 중심역할을 해 왔던 고마신사는 고마란 성을 쓰면서 고구려인의 후예라고 자부하는 약광의 60세손인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50)가 최고신관 격인 궁사(宮司)직을 맡아서 이어오고 있다.

이날 기념식에는 아키히토 일왕의 사촌 동생인 고 다카마도노미야 친왕의 부인 히사코 여사, 하세 히로시 일본 문부과학상, ‘약광의 모임’ 명예고문인 라종일 전 주일 대사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유흥수 주일한국대사는 축사에서 “두 나라의 친선과 교류의 뿌리를 상징하는 곳”이라고 축사했다. 고려약광회의 박청박 부회장은 “고구려 등 한반도의 피를 받은 많은 후손이 일본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뿌리를 잊지 않고 있다”면서 “이곳은 한반도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후세에게 일깨워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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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7일 일본 시골 마을을 찾았다. 도쿄역에서 약 70㎞ 떨어진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 인구 5만7000여 명의 작은 농촌이다. 전철을 타고 히다카시 외곽 ‘고마(高麗·고려)역’에 도착했다. 역명에 담긴 ‘고려’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역무원은 “일본에선 고구려를 ‘고마(こま)’ 또는 ‘고쿠리(こうくり)’로 부른다”며 “이곳이 고구려 마을”이라고 했다. “고려 왕조는 ‘고라이(こうらい)’로 발음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역 광장에 버티고 서 있었다. 일본 땅에서 만난 한국 장승은 고향 사람처럼 반갑다. 시골길을 따라 걷다 보니 고마신사의 입구가 보인다. 일제 강점기 참배를 강요당했던 우리 민족의 한을 떠올리면 신사는 결코 기분 좋은 곳이 아니다. 그러나 ‘고(高)’와 ‘려(麗)’ 사이에 작은 글씨로 ‘구(句)’를 새겨 넣어 ‘고구려’의 흔적을 남긴 신사 현판은 한반도와 일본의 과거를 새삼 되돌아보게 했다.

 나당(羅唐) 연합군이 고구려를 멸망시키기 2년 전인 666년 일본에 외교사절로 파견됐던 약광(若光). 그는 패망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고구려 유민 1799명과 함께 척박한 땅을 개척했다. 고대 역사서인 『속일본기(續日本紀)』는 고구려 왕족인 약광이 703년 야마토(大和) 조정으로부터 ‘고려왕(高麗王)’ 성씨를 받았다고 기록했다.

 716년 일본 조정은 도호쿠(東北) 지방에 흩어져 살던 고구려인들을 지금의 고마신사 일대 무사시노(武?野)로 이주시킨 뒤 고마군(郡)을 창설했다. 약광은 초대 군장(郡長)으로 임명돼 고구려 문화를 이어가며 변방을 부흥시켰다. 주민들이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사당이 고마신사다. 후손인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50)가 현재 60대 궁사(宮司·신사 책임자)를 맡고 있다.

 고마군이 올해 건군(建郡) 1300주년을 맞았다. 재일교포와 일본 주민, 한·일 양국의 학자 등 217명이 주축이 된 ‘고마약광회’와 동북아역사재단, 히다카시가 각종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고구려 의상 제작 교실’과 ‘고구려 유적 강좌’는 수시로 마을회관에서 열린다. 4월 말엔 ‘1300년 기념비’ 제막식도 개최된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사촌 동생인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高円宮憲仁·사망)의 미망인 히사코(久子) 여사도 왕실 대표로 제막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고마약광회 명예 고문인 라종일 전 주일대사는 “1300년의 인연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한·일 공동의 축제를 통해 양국은 물론 일본 교포사회가 화합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하정용 사무국장도 “두 나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한 시기가 더 많았다”며 “한·일 우호의 새 시대를 기대한다”고 했다.


이정헌 도쿄 특파원   중앙일보
 일왕 明仁(아키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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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9
 일본 속의 백제 책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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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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