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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림성 (2016-08-01 11:30:34)
백두대간 지리산(白頭大幹 智異山) HIT : 172
백두대간 지리산(白頭大幹 智異山)

▷ 백두대간이 언제 기록되었는가?

백두대간이 기록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영조때에 조정에서 대대적으로 편찬한 문헌비고(文獻備考)의 지리지인 여지고(輿地考)에 백두대간이 모두 차례대로 모든 산이 순차적으로 편집되어 있는 것을 편집방법을 바꿔 대간(大幹)과 정간(正幹)으로 나누어 세계식(世系式)으로 편집하고 산경표라 이름을 붙인 것으로 사료된다.

영조 46년 신축(1770) 1월, 왕은 대신과 비국당상(備局堂上)을 불러 대신들의 관장 아래 편찬을 명하여 이에 필요한 찬집청(纂輯廳)이 개설되고 동시에 편찬사업이 시작되었다. 이때 왕은 나이 77세의 고령으로서 생전에 이 사업을 완성하려는 조급한 마음으로 찬집청의 신하들을 저녁 퇴근도 번갈아 시키고 주야근무를 명하여 편찬사업 착수 8개월 만에 100권 40책의 인쇄까지 완성되엇다. 원임대신(原任大臣) 홍봉한(洪鳳漢)과 영의 김치인(金致仁)등이 영조의 명을 받아 공사(公私)의 실기를 참고하고 중국 마단임(馬端臨)의 문헌통고(文獻通考)를 본떠 상위. 여지. 예. 악. 병. 형. 전부. 재용. 호구. 시적. 선거. 학교. 직관 등 13고로 분류하여 100권 40책을 편찬하고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라 했다. 그 후 정조 6텬 임인(1782)에 중보를 하고 또 고종 광무7년 계묘(1903)에 대대적으로 수정과 중보를 하여 250권 100책으로 편찬하여 인쇄하고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라 했다.

원편인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를 보면 권지(卷之)6에서 권지22까지 여지고 17권 중 권지 12에서 권지 15가지 4권이 총설(總說)로부터 전국의 으뜸가는 산천을 설명했는데 바로 12권에 백두대간이 들어 있고 다음에 각 도별의 산천을 차례로 서술하였다

▷여지고(백두대간)은 누가 편집했는가?

문헌비고 원편(原編)의 편집명단을 보면 원임(原任)대신 4명과 시임대신(時任大臣)3명, 당상(堂上)10명, 낭청(郎廳)9명 등 함께 26명만 올려 있을 뿐, 누가 어느 부서를 담당했다는 말은 없다. 이를 상고해보면 조선왕조실록 영조 46년경인 윤 5월 병오삭 신유(辛酉-16일)에 ‘문헌비고의 상위고가 완성되었고 임금이 친히 숭정전에서 받아 편집당상을 차등 있게 상을 주었다. 임금이 비고가 완성됨을 신경준의 강역지가 기본이니 특별히 가자(加資)하라’고 명했다. 라고 한 것으로 보아 여지고도 신경준이 편찬한 것이 확실하다고 할 것이다. 그때 신경준의 관직이 통훈대부 장악원정(通訓大夫 掌樂院正)의 당하관(堂下官)으로 그 방대하고 어려운 일을 혼자서 어떻게 편집했을까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편집인쇄가 8개월에 끝났으니 그 기간은 자료 수집도 어려운 기간이다. 영조는 이를 찬집할 계획으로 미리부터 이에 필요한 자료를 모드 수집해 놓고 착수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여지고의 편집을 담당한 신경준은 이를 근거로 편집을 하고 그 뒤 체계를 바꿔 대간, 정간, 정맥으로 분류하고 계보식으로 전국의 산을 51판에 편집하고 이름을 산경표라 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문현비고는 영조 46년(1770) 경인 8월에 100권 40책을 배진(陪進)하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편집인 신경준은 숙종 38년(1712) 임진에 출생하여 59세에 여지고를 편찬하고 그 공으로 동부승지(同副承旨)와 병조(兵曹)참지(參知)를 지내고 그 후에 북청부사, 장계부사, 제주목사를 역임한 뒤 정초3년(1779) 기해에 고향인 전라도 순창군 순창읍 남산(南山)대(臺)에 돌아와 2년 후인 정조5년(1781) 신축5월에 졸서(卒逝)했다. 그헐다면 내직에 있을 때에는 어렵고 외직에 있을 때에 산경표를 편집한 곳으로 보면 기간은 여지고를 편찬한 다음해부터 졸년의 10년간의 어느 해일 것이다.

▷ 북한쪽 백두대간

백두산을 ‘산해경’에서는 불함산이라 하였고 당서에서는 태백산이라 하였다. 태백산은 압록강. 토문장의 두 강 사이로부터 남남 쪽으로 연지봉과 허황령에 이르어서 에워싸여 천평이 되고, 동남쪽으로 뻗어 보다산. 사이봉. 원항령, 어은령이 되어 원산에 이른다

원산은 서북쪽으로 마등령. :쾌산령에 이르고, 남쪽으로 황토령. 천수령. 조가령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후치산 (북청의 산천권에는 후치령이라고 되어 있음) 향령산, 태백산에 이르고, 또 서남쪽으로 부진령. 태백역산. 소백역산과 황초령. 사향령에 이르며, 또 서북으로는 설한령에 이르고, 동남쪽으로 낭림산에 이른다.

낭림산은 남쪽으로 삼검산과 마유산. 횡천령. 두무산. 애전산. 철옹산. 오강산에 이르고 동남쪽으로 운령산. 우라산에 이르고. 동쪽으로 거차산에 이른다 동북쪽으로 토...

▷남쪽의 백두대간

•진부령(陳富嶺) : 간성의 영로권에 진부령이라고 되어 있음, 남으로 마기령(磨耆嶺) ‘간성의 산천권에 마기라고 되어 있음, 훌리령. 미시령에 이르고 서쪽으로 설악에 이르고 동남쪽으로 오색령, 연수령, 조침령에 이르고 또 남쪽으로 구룡령과 오대산에 이른다.

•오대산 : 오대산은 동남쪽으로 대관령. 삽당령(고성의 영로권에 삽시령이라고 되어 있음), 백복령, 두타산, 청옥산에 이르고 서쪽으로 죽현. 건의령 ‘삼척의 영로권에 건의령(巾衣嶺)이라고 되어 있음, 대박산. 태백산에 이른다

•태백산 : 태박산은 서쪽을 수다산. 백병산에 이르고 또 서쪽으로 마아산. 곳적산에 이르고 또 서쪽으로 소백산에 이르러 죽령의 액구가 되고 또 서남쪽으로 도솔산, 작성산과 대미산. 계립령에 이르러 조령의 액구와 이화현. 회양산이 되고, 남쪽으로 주현. 대야산과 불일산. 화산에 이르러 속리산에 이른다.

•속리산 : 속실산은 남쪽으로 구봉산. 봉황산과 웅현. 웅이령에 이르러 고산에 이르고, 동쪽으로 흑운산에 이르고 서쪽으로 추풍령에 이른다. 님쪽으로 쾌방산. 황악산. 삼성산. 우두산. 삼도산. 대덕산에 이르고 서남쪽으로 덕유삼봉. 백암봉. 봉황봉에 이르고 남쪽으로 육십치와 장안산에 이른다.

○장안산 : 장안산은 남쪽으로 본월치. 백운산과 기치. 유치, 여원치에 이르고 지리산에 이른다.

위의 백두대간을 살펴보면 그 동안 영(嶺)이 치(峙)로, 산(山)이 봉(峯)이나 현(峴)과 같이 변한 것은 말할 나위 없고 그 소재지를 모르거나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곳도 허다하다. 이 남한 부분을 살펴보면 그 대개를 알 수 있다.

진부령 다음 마기령이 알 수 없고 흘리령은 지금의 흘리(屹里)에서 알프스 리조트 뒤로 넘는 고개가 아닌가 생각 했는데 대동여지도를 보니 대간령으로 생각된다. 미시령과 설악은 그대로이고 다음에 오색령과 연수령은 어디인지 알 수 없는데

•지리산

지리산은 남한 내륙에서 가장 높은 산일뿐만 아니라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의 3개도와 5개시.군에 걸쳐 있으며 둘레만 8백여리, 면적은 14억5천6백여만평에 이른다. 넓기만 한 것이 아니라 기세도 우람차고 장대하다. 상봉인 천왕봉(天王峯:1915m)을 비롯해서 해발 1,500m 넘는 봉우리가 12개나 되고 이 봉우리가 만든 산길이 20개가 넘으니 얼마나 광대한가 우리는 신성하고 우대한 영산을 오른다는데 대해서 몹시 마음 설했다.

•지이산이 왜 지리산인가”

지리산은 한자음으로는 어디까지나 지이산이다. 구개음화로 변하는 것도 아니다. 판이(判異)나 차이(差異) 또는 상이(相異)등 많은 문자가 있어도 리로 부르는 문자는 하나도 없으니 실로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최고의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아도 지리에 대한 설명은 없다. 백두산에서 흘러 내려왔다고 두류산, 삼신산의 하나로 방장산. 현재의 음과 같은 지리산 등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문자 해석으로 보아 옛적에 이 큰 산에 지혜로운 이인이 많이 은거했다는 뜻일까? 그러면 음 그대로 지이로 부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지리산의 문자 발원은 처음으로 신라의 문장가인 고운 최치원 선생이 지은 하동 쌍계사의 진감선사 대공탑비(국보제47호)문에 처음으로 나온다고 했는데 최치원은 어찌해서 지리산이라고 했는지 해설이 보이지 않는다. 고대로부터 일명 지리산으로 불렀다는 이름 그대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라 생각해 보면서 연구 과제로 남겨둔다.

1.성삼재(姓三峙치)

성삼재는 마한의 한 부족이 이 심원계곡(深遠溪谷)으로 들어가 달궁(達宮)을 짖고 살았다. 그때 성다른 장수 3명이 고개를 지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2. 코재 : 화엄사에서 올라오기가 코같이 날카롭다 하기도 하고 또 화엄사에서 올라오는 길이 너무나 가팔라서 아래에서 이곳까지 올라오면 코가 달는다고 해서 ‘코재’라 했다고 한다.

3. 노고단(老姑壇) : 1)지리산은 신라시대부터 오악(五嶽)의 하나인 남악으로 부리어 왔는데 연대기록은 미상이다. 신라시대에는 상봉인 천왕에 지리산 신사라는 제단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이곳 노고단으로 제단을 옮겨 남악사라 하였고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는 갈미봉 아래로 남악사를 옮겨서 국태민안과 시화년풍을 기원하는 제를 지냈는데 이 제를 통하여 우리조상들의 숭고한 정신을 이어 받고 있다. 2)노고단은 천왕봉. 반야봉과 더불어 지리산 삼대주봉의 하나로 1507m이다. 노고단 정상은 길상봉이라고도 불리며 정상에서부터 동남쪽으로 급경사이나 서쪽으로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옛날 이곳에 지리산 신령인 선도(仙桃) 성모할머니를 모시는 남악사가 있었다 하여 ‘ 산신할머니를 모시는 단’이라는 의미로 노고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3)아고산(亞高山)지대(地帶) : 해발 1500m에서 2500m에 속하는 아고산 생태계를 나타내는 초원지대를 말했다. 노고단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아고산지대로 이곳에 초원이 형성되는 것은 구름과 안개, 강한 바람 그리고 낮은 기온 때문에 키 큰 나무가 거의 자라지 못하며, 철쭉 같은 관목(灌木)류나 풀과 야생화 같은 초본류들만 자란다. 이러한 가혹한 기후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지만 일단 한번 훼손되면 스스로 회복할 수 없는 것이 흠이다.

4. 돼지평전 ; 마늘모양의 원추리뿌리를 멧돼지들이 퍼먹던 곳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5. 임걸령(林傑嶺) : 이곳에 초적(草賊)인 임걸년(林傑年)이 숨어 살던 곳을 임걸령이라 하고 먹던 물을 임결령 샘이라고 한다.

6. 노루목 : 노루목은 삼도봉으로 바로 가는 길과 반야봉으로 올라가는 길의 삼거리 길로 노루들이 자주 지나다니던 길목이란 의미도 되겠지만 그 보다 반야봉의 지세가 피아골 방향으로 가파르게 흘러내리다가 이곳에서 잠시 멈춰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노루목이라고 부른다 한다.(반야봉 1.2km, 노고단 4.5km, 천왕봉 27.8km, 장터목산장 25.4km)

7. 삼도봉(三道峯 1550m) : 삼도봉은 암봉으로 날라리봉이라고도 한다. 바위 모양이 낫 날같다 하여 ‘낫날봉’이라 하던 것이 와전되어 ‘날라리봉’으로 되었다고 하고, 삼도봉 주위의 봉우리가 나란히 배열되어 처음 이름을 지을 때에 ‘나란이봉' 이던 것이 ‘닐리리봉, 날라리봉’으로 변했다는 설도 있다 한다. 삼도봉은 경남. 전남. 전북의 삼도를 이룬 곳으로 남쪽을 바라보면 불무장등(不無長燈)으로 내려가는 전라남도. 경상남도 능선을 경계로 하여 피아골로 가는 계곡이 선명이 보이고 만학(萬壑)군봉(羣峯)이 눈 아래에서 부목하고 있는 형상이다. 동쪽으로 토끼봉이 푸르게 솟아 있는데 안개가 산허리를 살짝지나가는 풍경이 아름답다. (이정표 삼도봉1560m →반야봉1.5km, 노고단 5.5km, 뱀사골산장 0.8km)

8. 화개재1315m : 화개재는 지리산 종주코스 가운데 가장 낮은 곳으로 남원군 산내면과 하동군 화개면의 경계에 속한다.  옛날에 하동사람과 남원사람이 물물교환을 했다는 고사를 뒷받침이나 하듯이 영상의 넓은 평원이 지금도 그 현실을 입증하는 듯하다 (이정표 화개재 1260m→반야봉2.3km, 천왕봉26km, 토끼봉1.2km, 노고단6.3km, 반선9.2km, 뱀사골산장0.2km) –북쪽으로 내려가면 반선 못가서 ‘간장소’라는 곳이 있다. 화개재에서 소금을 사가지고 내려가다가 미끄러져 소금을 모두 소(沼)에다 넣어서 간장소라 했다 하니 그 시절에 백성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9. 뱀사골

10. 토끼봉1522m : 토끼봉 정상은 평전으로 되어 있고 사면이 진달래와 철쭉으로 가득하다. 토끼봉이란 명칭은 반야봉을 기점으로 24방위(方位)의 정동(正東)에 해당하는 묘방(卯方)이라 하여 묘봉(卯峯)으로 부르던 것이 우리말로 해설해서 토끼봉으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전한다. 정상 초원에 ‘지보초’가 많이 자라고 있어 ‘지보등’이라고도 한다.( 이정표 천왕봉24.8km, 연하천산장3.0km, 반야봉3.5km, 노고단7.5km, 칠불암6.0km)

11. 연하천대피소1510m : 1년에 70일 정도 맑고 계속 연하(烟霞)로 해를 가리고 있어 연하천이라 했다고 한다.(천왕봉21.8km, 뱀사골산장4.2km, 노고단10.5km)

11. 삼각고지1482m : 삼각고지는 화개면, 마천면, 산내면의 경계지점이다. 북쪽능선이 경상남도와 전라북도를 가르는 도계이고 분수령이다. 동쪽의 물은 진주 남강으로 흐르고 서쪽의 물은 하동 섬진강으로 흐른다.

12. 형제봉1433m : 10m가 넘는 두 개의 바위가 서로 등을 맞대고 서 있어 형제봉이라 한다.

13. 벽소령(壁霄嶺-뱁실령) : 화개면과 마천면을 통하는 작전도로가 지나던 곳이고 지리산 종주 등반코스 중간지점이다. 옛날에 하동에서 함양으로 넘던 큰 길이 있었던 곳으로 지리산 10경 중 “벽소명월(壁霄明月)”로 어디서나 밝은 달을 볼 수 있다.

14. 영신봉(靈神峯)1651.9m-낙남정맥(落南正脉) : 낙남정맥이 이곳에서 시작해서 김해의 낙동강까지 뻗어내려 내륙 지방과 남해지방을 갈라놓는 정맥이다.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섬진강이 흐른다. 산줄기는 마산의 무학산(767m)과 기해의 신어산(630m)을 지나 낙동강 하구에서 머리를 숙인다. 이곳에서 시작한 낙남정맥은 삼신봉(1,284m) 을 지나면서 아득하게 구름 따라 힘차게 뻗은 산줄기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15.세석평전1600m

16. 촛대봉1703m : 올망졸망한 바위들의 군립체인 촛대봉은 마치 촛농이 흘려내린 것 같아서 부른 것이라고 한다.

17. 연하선경(烟霞仙境) : 연하봉(1730m) 아래 묘하게도 거북이 같은 돌 두개가 놓여 있다. 두 봉우리 사이로 내려가 안부를 지나 철 계단을 올라 뒤를 돌아보니 눈부시도록 반사되고 있다. 검은빛으로 된 바위들은 더욱 기묘하게 벌려 있다. 이곳이 지리산 10경의 하나인 연하선경으로 무인 산중에 신선이 놀던 곳으로 겨울의 정취는 문자 그대로 선경이라 한다.

18. 장터목(場基項) : 옛날에 남쪽의 산청군 시천면 사람과 북쪽의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이 물물 교역하던 장터였으므로 장터목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9. 제석봉(帝釋峯)1806m : 제석봉은 정상이 평평하며 옛날에 제석(帝釋)단(壇)을 설치학 제사를 지냈는데 그 후 폐지하고 봉우리 이름을 제석봉이라고 한다.

20. 통천문(通天門) 위 비문 :통천문 위 좌측 큰 바위에 조연명, 서상윤, 송연재 등 세 사람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서상윤 등 3인의 이름이 순수 자연인이 아니리라는 생각이 들어 외안고를 살펴보니 조연명은 헌종 임인(1842) 8월에 함양군수를 제수 받고 부임하여 을사(1845) 5월에 제직된 분으로 재임중(1843~1844)연간에 세 사람이 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21. 삼각점 아래 돌 기둥 둘 :

삼각점에서 내려오다 보면 바위가 둘이 나란히 있는데 조진순, 김상묵, 유영욱 문재고, 이용의, 한문오, 김차영 등의 이름이 새겨 있다.

조순진, 김상묵, 유영옥, 이병호, 문재고 , 이용의, 한문오, 김창영 등의 이름으로 외안고(外案考) 조진순(趙鎭順)은 정조 기미(1799)에 임실군수를 하고 김상목은 순조 임술(1802)에 함양군수를 하고, 남주현은 순조 병인(1806)에 함양군수를 하고 서호순은 철종 계해(1863)에 함양군수를 하고 이용의는 고종 을해(1875)에 김해부사를 하고 이원희는 고종 경자(1900)에 함양군수와 고종 신축(1901)에 단성현감을 하고, 조병길은 고종 임진(1893)에 산청현감을 했다. 혹시 동명이인인지 모르지만 지리산 관할 수토(守土)를 했으니 사위 없으리라 믿는다.

22. 천왕봉 : 행정구역상으로 경남 사청군 시천면 중산리 산 208번지와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산 100번지에 해당

▶구상나무 : 소나무과 상록침엽교목, 우리나라의 표고 500~2000m에 자생, 꽃은 5월에 피며열매는 8월에 익는다 목재는 재질이 좋아 가구로 쓰인다.

23. 개선문(凱旋門)1700m :

24. 마당바위 :

25. 로타리산장 : 진주의 로타리클럽에서 산장을 지음

26. 칼바위 :

첨부파일 백두대간 지리산.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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