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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yonggu (2014-10-10 16:43:19)
분당선 개통과 옛 고모님 생각 HIT : 578





* 분당선 개통과 옛 고모님 생각



작년 12월에 신분당선이 연장개통 되었으나 나는 바보 같이 반년이 지나도록 모르고 있다가 지난  6월9일에 시승을했다 이 개통으로 인해 수원 지방사람을 위시하여 근거리로 단시간에 멀리 돌아가지않고 승차하게 되었으니 시간상 또는 경제상으로 편리하게 오고 갈수 있게되니 이젠 최상의 나들이의 혜택을 만끽하며 다닐수 있으니 감사하다



앞으로 이 노선중 기흥(器興)역에서 연계 개통 예정인 용인경전철이 완전 개통이 된다면 바로 용인으로 갈수 있으니 그만큼 서울과 가까와진 거리인 것이다 그때 나는 순간적으로 떠 오르는게 있었으니 그것은 먼 옛날 나의 당고모(아버지의 4촌 누이)님의 츨가 당시의 일이 생각났다 물론 아버지 로부터 들은 이야기였다 때는 구한말의 시기로 나의 조부님 형제가 서울 중구 주자동에 이웃하여 사실 때 당고모님이 용인에 명문대가인 남씨댁으로 출가를 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는 지금같이 기차나 버스는 없고 용인(龍仁)으로 가려면 천생 교통수단 이란 인력거나 소 달구지가 있었지만 그런 장비는 없고 단지 내 발로 걷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용인 이라 하면  머나먼 시골 산골이 었는데 가는 경로는 서울에서 아침 일찍 떠나 서빙고(한남) 한강 나루를 건너 말죽거리(신사동)를 지나 곤지암을 지나 용인까지 부지런히 걸어도 하루가 걸려서 도착 되었다



여기에 잠깐 용인을 소개 하자면 당시 각 고을마다 그 고장의 유래로 부르게 되었는데 용인을 가리켜 속칭 김량마을이라 불렀다 말에 의하면 김량은 용인의 중심지로 김량이란 사람이 처음 용인 저자거리(김량장)에서 장사를 했는데 운이 티어 돈을 많이 버렀다 해서 붙혀진 이름이 었다한다 그래서 고모님 출가후 고모님을 가리켜 김량댁이라 불렀다 한다  



이 고모님은 내 아버지의 손 아래 4촌 누이고 내게는 5촌 당숙에 속하는 당고모님 이시다 요즈음도 간혹 있겠으나 예전에는 흔히들 집안 끼리 타협하여 인연을 맺는 사례가 있었는데 이것을 가리켜 '곂사돈" 또는 "맡혼인" 이라했다 우리 집안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모님은 용인에 사는 남씨댁 가문으로 시집을가고 반대로 남씨댁 규수는 내 아버지와 결혼한 사이였으니 당시 양가의 화합의 경사 였었다



그래서 양가 합이 증진 되었고 서로간 매부이자 처남으로 부르며 친교가 두터웠다 이렇게 옛날 이 시대는 대가족 제도로 한 할아버지 슬하의 자손으로 1~10촌까지도 한 마을에서 우애있고 다정하게 살아 왔으나 이젠 핵가족 제도로  4촌도 모르는등 멀게만 살고있는등 친가 보다는 외가를 선호하는 경향이니 나는 시대적 변천에 그저 아쉽기만 하다  



이런 연유로 그후 고모님은 1년에 한번 씩은 용인에서 서울 나드리로 친정에 오게되면 의례히 꼭 나의 아버지를 내 세워 용인으로 내려 가서 하룻밤을 주무시고 다음날 하침 일찍 고모님을 데리고 오셨다 고모님은 약 5~6일간 친정에서 머물다가 다시 용인 시댁으로 아버지가 고모님을 데려다 또 하룻밤을 주무시고 혼자 걸어 오시곤했다



나는 지금도 눈 감으면 그 장면이 보이는듯 하니 격세지감이며 호랑이 담배 먹던 엣 이야기 이다 그리고 그때 아버지와 고모님이 다니느라 얼마나 힘들고 고생 하였는지는 여기에  말할 여지가 없겠다



나는 머지않아 용인 경전철이 완전 개통되는 날이오면 수년전 고6촌 아우가 어릴때 부모님과 같이 살며 자란 고향땅에 전원주택을 지어 잘 살고 있는 곳을 다시 한번 시승을 겸하여 찾아가 볼 심산으로 있으며 하루속히 개통 되길 축수하며 고대 하고있다  여기에 이곳 용인의 교통을 덧붙인 다면 그후 협궤(狹軌)로 1931.12.1에 수려선(水原~麗州간)이 개통 되었으나 개통된지 41년만인 1972.3.31 수려선이 운행수입 적자로 폐선 되고 말았다



나는 이런 고모님과의 연으로 내가 중학교 재학시절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 졸업반인 5학년 때 서울 (당주동 39번지) 고모님댁에 류숙하며 많은 신세를 끼첬다 게다가  인자하신 고모부님은 재학당시 나의 학교 후견인으로 줄업식 날에도 부모님을 대신하여 참석해 주시는등 어언 약 70년전의 일이지만 지금도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특히 고모님은 5형제를 두셨으나 다들 세상 떠나고 이젠 막내 아들만이 생존해 있는데 나 보다 9세 낮은 고 6촌과는 그런 관계로의 심적으로 나마 서로 의지하고 있는 실정으로 그는 요새 전직을 은퇴하고 옛 고향인 용인에다 멋진 전원주택에서 살고있는 아우님을 만나 보러 용인경전철이 개통이 되면 고마우신 고모님을 생각하며 꼭 가 보련다  









 비빔 밥의 맛
leeyonggu
2014/12/06
  수고하십니다.
강민성
201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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