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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림성 (2014-01-11 16:56:40)
성균관의 역사(歷史) HIT : 532
성균관의 역사(歷史)

우리 나라 국립대학의 시초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태학(太學)이 설립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다음으로 신라 신문왕 2년(682) 6월에 국학(國學)을 설립하고, 고려 태조 13년(930)에는 왕이 서경(西京)에 행차하여 학교를 설치하고 육부(六部)의 생도들을 가르쳤다.

이후 성종 11년(992) 12월에 국자감(國子監)을 설립하고, 충렬왕 30년(1304) 6월에 국자감(國子監)을 성균관(成均館)으로 개명(改名)하였으며, 공민왕(恭愍王) 16년(1367) 12월에는 숭문관(崇文館) 옛 터에 성균관을 창건하였다. 이렇게 보면, 우리 나라 국립대학교육의 역사는 약 1,600여 년이 넘는다.

고려 말기까지 개성에 있던 성균관이 현재의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明倫洞)[옛 이름은 숭교방(崇敎坊)]에 자리잡게 된 것은 조선왕조가 건국되고 수도를 한양으로 천도한 이후 태조 7년(1398)이었으며, 성균관 설립과 동시에 전국에는 360개 향교가 설치되었다. 이로부터 중앙과 지방의 교육체계가 확립되었으며, 조선왕조 전 시대를 걸쳐 유교교육의 구심점으로서 그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편, 성균관은 정종 2년(1400)에 소실(燒失)되었으나, 태종 7년(1407)에 중건(重建)하고 묘정비(廟庭碑)를 세웠다. 또한,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壬辰倭亂)으로 소실된 것을 선조 34년(1601)에 대성전 및 명륜당과 부속건물을 연차적으로 중건(重建)•보수(補修)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 후 몇 차례의 중•보수를 거친 후 1910년 일제의 강압에 의해 국립대학과 민족교육의 맥이 끊어졌으며, 명칭도 경학원(經學院)으로 바뀌었다. 이때 일제는 1924년 식민지 교육을 위하여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을 설립하였다. 이후 성균관은 명륜학원(明倫學院), 명륜전문학교(明倫專門學校)로 불리다가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성균관으로 환원되고, 1946년 9월 25일 유림의 성금으로 성균관대학교가 설립되어 민족교육의 맥을 계승하게 되었다.

성균관은 태학(太學)으로도 불리었으며, 중국 주(周)나라 때 제후의 도읍에 설치한 학교기관의 명칭인 반궁(泮宮)으로 지칭되기도 하였다. 성균관 일원을 문묘(文廟)라고 하는데, 주요 건물로는 대성전(大成殿)과 명륜당(明倫堂)이 있고, 부속 건물로 동무(東)와 서무(西),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존경각(尊經閣), 육일각(六一閣) 등이 있다.

성균관에는 최고 책임자로 정3품직인 대사성(大司成)을 두었으며, 그 아래에 제주(祭酒)•악정(樂正)•직강(直講)•박사(博士)•학정(學正)•학록(學錄)•학유(學諭) 등의 관직을 두었다. 조선시대의 교육제도는 과거제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초시인 생원시(生員試)와 진사시(進士試)에 합격한 유생(儒生)에게 우선적으로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성균관 유생의 정원은 개국 초에는 150명이었으나, 세종 11년(1429)에 200명으로 정착되었다.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한 유생을 상재생(上齋生)이라 하였고, 소정의 선발 시험인 승보(升補)나 음서(蔭敍)에 의해 입학한 유생들을 하재생(下齋生)이라 하였다. 성균관 유생은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에서 생활하였으며, 출석 점수인 원점(圓點)을 300점 이상 취득해야만이 대과(大科) 초시(初試)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유생의 생활은 엄격한 규칙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자치 활동기구인 재회(齋會)가 있었다.

유생은 성균관에서 기숙사생활을 하는 동안 국가로부터 학전(學田)과 외거노비 (外居奴婢) 등의 편의를 제공받았으며, 교육 경비로 쓰이는 전곡(錢穀)의 출납은 장학기구인 양현고(養賢庫)에서 담당하였다. 유생은 또한 당대의 학문•정치 현실에도 매우 민감하여 문묘종사(文廟從祀)나 정부의 불교숭상 움직임에 대해 집단 상소를 올렸으며, 그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권당(捲堂 : 식사거부) 또는 공관(空館 : 성균관 퇴거)이라는 실력행사를 하기도 하였다.

현재 성균관은 성균관대학교와 분리되어 운영되고 있으며, 전국 234개의 향교와 더불어 유교사상과 전통문화 계승•발전의 산실로서 그 맥을 잇고 있다. 특히, 매년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청소년 인성교육>을 비롯한 각종 사회봉사 활동, 예절상담을 통한 생활의례 보급, 전통문화 계승을 위한 출판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자료출처 : http://cafe.daum.net/2jhg/3cHW/6?q=%BC%BA%B1%D5%B0%FC%C0%C7%20%BF%AA%BB%E7&r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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