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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yonggu (2012-12-06 17:57:11)
철도 원로회원 탐방기 HIT : 430


       (설    명)


아래 글은 철도출신 퇴직자로 아직 살아계신

원로회원 탐방기로..거번 철우회장 으로부터

요청을 받아.. 지난 10월10일 탐방의 글이다

이미 지난 철우회보 2012.11.10자  제116호

2~4페이지에 계재 된것을 추후로 전달 하니

참고로 하길 바란다....

이 김영관옹은 철도의 중진 이었으며 광복군

출신으로 현재 한국 광복군 동지회장 이시다..



김영관 선배님을 찾아서....(탐방기)

2012.10.10(수)오후 2시정각 용산구 이태원로(삼각지)에 있는 전쟁기념사업회 434호실에 들어가니 오늘 찾아뵐 김영관 회장이 건강미 넘치는 얼굴로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차 한잔하며 둘러보니  정면에는 높이 큼직한 태극기 그리고 좌측에는 김구선생 김좌진장군 지청천장군의 사진이 걸려있고 우칙에는 역대 회장의 사진이 순서대로 걸려있다 후부에는 김구선생과 안중근선생의 친필 족자등이 엄숙하게 걸려 있었으니 우선 우리나라 독립이란 감정이 물클했다



김회장은 1924년생으로 금년 89세 경기 포천에서 출생하였으며 현재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거주 3남2녀 5남매중 장남으로 여러 형제 다 생존하고 있다니 장수의 집안 이었다 학업은 선린상고-경성사범-성균대법과-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 또는 수료 하였고 군대는 육군대위로 예편되었다 한다



그후 국무원 사무국 수습행정원 공개채용으로 1957년도 철도로 배치되어 입사 했다하며 중진으로 발탁 되어서는 철도재원 확보로 균형예산 정책에 주력하여 평일은 늦게까지 공휴일은 특근으로 당시 경부고속 전철계획안을 당시 국무총리 김종필씨에게 직접 부리핑을 하였다 하며 오늘의 kTX를 보면 감개가 무량하고 철도에 대한 자부심으로 당시 같이한 직원들의 노력과 수고에 감사 한다고 말했다



광복군으로 투신한 시기와 동기는 일정말기 징병 제1기로 입대하여 함흥(咸興) 부대에 있다가 다시 중국으로 이동후 중국 중경(重慶)에 임시정부가 있다는것을 알고 3명이 결의하여 저장성(浙江省) 뚱양(東陽)에서 1944년12월에 일본 군대를 탈출하여 한국 광복군에 입대하여 장시성(江西省) 허커우진(河口鎭 )을 본거지로 저장성(浙江省) 푸제성(福建省) 장시성(江西省)등지에서 항일 독립운동에 종사 하다가 탈출한지 8개월만에 감격의 8.15 해방을 맞이하여 귀국했다 한다  



저서로는 1997년 광복군 노병(老兵)들의 회고과 바램을 담은 "저 산을 넘어서"와  2005년 2회째로 또 망국(亡國)을 할 것인가..? 경각심을 담은 "일그러진 자화상"을 펴 냈다한다 그리고 1969년도 광복군동지회 재적수는 67명중 현재 2~3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으며 나머지 분은 별세 하셨다 한다 상훈은 1952년 화랑무공훈장 1963년 독립유공 대롱령훈장 1972년 녹조근정훈장 1990년 건국훈장(애족장)을 받았다 한다  



위 김영관 선배님은 이미 각 신문에 투고및 인터뷰 그리고 방송 출연등으로 "과거 없는 오늘이 없고 오늘이 없는 미래도 없다"란 구호아래 지난 역사에서 배워 알고 앞날을 대비(對備)해야 한다 했으며 또한 우리 철우회보나 각 메스컴에 보도되어 잘 알려져 있으나 새삼 젊어서 일찍 우리나라 광복군으로 투신한 독립투사 이시다



또한 우리나라 발전의 동맥인 철도에도 많은 기여와 공적이 있는 분이시다 내가 이분을 알게된 시기와 동기는 1957년도 당시 내가 용산 교통부 경리국 재정과에 근무할 때 우연하게 경리국에 들어와 만나게 되었다 입사 당초는 이 분에 대한 존재를 몰랐으나 그후 알고보니 항일 투사임을 알았고 대단하신 분임을 알게 되었으며 존경의 대상이었다



더구나  이 분은 나와같은 고등학교 졸업 동기생의 친 형님인 것을 안 나는 그때부터 좀더 가까히 친밀하게 대하게 되었다 이 분을 겪어보니 말없이 실천(實踐)하는 조신하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로 근무에 성실하였다 저런분이 어덯게 광복군 이었나 하고 좀 의아(疑訝)했었다 그리고 철도 퇴직자 모임인 철우회 산하 계통 분야별로 매년 있는 경우회 모임에도 빠짐없이 꼭 참석 하는 분이셨다



그리고 이 분의 생활신조는 늘 아직 남북통일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지금도 계속하여 그 일에 종사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곳이 바로 이 전쟁기념 사업회 회장이시다 또한 90이  가까와도 평소 독립투혼의 의지와 기백(氣魄)으로 살고있어 그런지 아직도 늙은티 없이 꼿꼿한 자세로 정정하고 젊게 보이는 분이시다



또한 이분의 경력을 보면 다채롭다 1965.9.15일 안춘생 초대 회장을 선두로 500여명으로 창립 발족한 한국광복군 동지회 제12대 회장으로 선임되어 지난 2011.5.27자로 취임하여 우리민족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받은 임시정부 국군으로 조국 광복을 위해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며 나라사랑 정신과 애국심 함양 그리고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 함이 그의 신조(信條)이자 목표이었다  



또한 독립 투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철도 발전에도 공헌한 바가 크신 분으로 1973.8.21 경리국장으로 승진되고 다음은 1974.2.22 기획관리실장(2회) 다시 두번째로 경리국장으로 다음은 자재국장을 거친후 이번에는 1981.1.5자로 철도청 차장으로 대 영전이 되었으니 이런 승승장구(昇昇長久)한 분이 또 있겠는가 특히 그중 가장 긴 년수로 경리국장을 역임했으니 이는 왕년에 선린상고를 졸업한 소치이며 실로 경리분야의 달인(達人)이 분명했다



또한 당초 광복군은 1940.9.17 중국 중경(重慶)에서 창립하여 광복군(光復軍)이란 표지(票識)로 지(誌)를 창간 하였으나 일시 중지 하다가 다시 70년만에 작년 2011.9부터 봄.여름.가을.겨울 계간(季刊)으로 책자(誌)로 활동사(活動史)를 발간하고 있다 (현재 5호까지 발행) 이 광복군 지에는 매호마다 회장님의 권두언.시론.논단.초점등 말고도 각계 각층의 저명한 인사들의 글이 쇄도 하는등 이에 관련되는 독립투사에 대한 글과 사진 기타등 다양한 역사자료등이 수록되어 있었다 (별지 책자 참조)...  



그리고  김회장님은 철도청 차장을 끝으로 이에 철도의 부수사업인 홍익회(弘益會) 회장으로 근무(1982~1986)할 당시 못다한 "한국 광복군 선언문비"를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에 건립(建立) 했다하니 얼마나 독립정신이 투철 한가를 알수가 있었다.



이야기 한지도 2시간이 다가 왔다 끝으로 회원들에게 할 말이 없느냐 하니 회장님은 앞으로 더욱 철도의 무궁한 발전과 회원들의 건강과 가정에 행운이 있기를 기원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올 때 지난달 (2012.9.17) 한국광복군 창군 제72주년 기념식및 학술 강연회가 백범 기념관에서 있었다며 그때 나눠 준 기념품과 책자를  받아들고 귀가길에 나섰다





끝으로 이런분 들에 비해 나는 무엇인가... 겨우 1945.8.15 해방직전 까지도 우리나라 태극기를 모르고 살다가 졸업직전 같은반 독립투사의 손자로 부터 학교 칠판에 그린 태극기를 보고 처음 알았으니 그 만큼 무지 목매했던 나를 자책하며 오직 독립 투쟁에 앞장 선 애국지사 선조님들에게 그저 죄송한 마음으로 다가서며 그저 사죄하는 바이다...




(설명)

아래 글은 철도출신 퇴직자로 아직 살아계신

원로회원 탐방기로..거번 철우회장 으로부터

요청을 받아.. 지난 10월10일 탐방의 글이다

이미 지난 철우회보 2012.11.10자  제116호

2~4페이지에 계재 된것을 추후로 전달 하니

참고로 하길 바란다....

이 김영관옹은 철도의 중진 이었으며 광복군

출신으로 현재 한국 광복군 동지회장 이시다..







     *김영관 선배님을 찾아서....(탐방기)





2012.10.10(수)오후 2시정각 용산구 이태원로(삼각지)에 있는 전쟁기념사업회 434호실에 들어가니 오늘 찾아뵐 김영관 회장이 건강미 넘치는 얼굴로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차 한잔하며 둘러보니  정면에는 높이 큼직한 태극기 그리고 좌측에는 김구선생 김좌진장군 지청천장군의 사진이 걸려있고 우칙에는 역대 회장의 사진이 순서대로 걸려있다 후부에는 김구선생과 안중근선생의 친필 족자등이 엄숙하게 걸려 있었으니 우선 우리나라 독립이란 감정이 물클했다



김회장은 1924년생으로 금년 89세 경기 포천에서 출생하였으며 현재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거주 3남2녀 5남매중 장남으로 여러 형제 다 생존하고 있다니 장수의 집안 이었다 학업은 선린상고-경성사범-성균대법과-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 또는 수료 하였고 군대는 육군대위로 예편되었다 한다



그후 국무원 사무국 수습행정원 공개채용으로 1957년도 철도로 배치되어 입사 했다하며 중진으로 발탁 되어서는 철도재원 확보로 균형예산 정책에 주력하여 평일은 늦게까지 공휴일은 특근으로 당시 경부고속 전철계획안을 당시 국무총리 김종필씨에게 직접 부리핑을 하였다 하며 오늘의 kTX를 보면 감개가 무량하고 철도에 대한 자부심으로 당시 같이한 직원들의 노력과 수고에 감사 한다고 말했다



광복군으로 투신한 시기와 동기는 일정말기 징병 제1기로 입대하여 함흥(咸興) 부대에 있다가 다시 중국으로 이동후 중국 중경(重慶)에 임시정부가 있다는것을 알고 3명이 결의하여 저장성(浙江省) 뚱양(東陽)에서 1944년12월에 일본 군대를 탈출하여 한국 광복군에 입대하여 장시성(江西省) 허커우진(河口鎭 )을 본거지로 저장성(浙江省) 푸제성(福建省) 장시성(江西省)등지에서 항일 독립운동에 종사 하다가 탈출한지 8개월만에 감격의 8.15 해방을 맞이하여 귀국했다 한다  



저서로는 1997년 광복군 노병(老兵)들의 회고과 바램을 담은 "저 산을 넘어서"와  2005년 2회째로 또 망국(亡國)을 할 것인가..? 경각심을 담은 "일그러진 자화상"을 펴 냈다한다 그리고 1969년도 광복군동지회 재적수는 67명중 현재 2~3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으며 나머지 분은 별세 하셨다 한다 상훈은 1952년 화랑무공훈장 1963년 독립유공 대롱령훈장 1972년 녹조근정훈장 1990년 건국훈장(애족장)을 받았다 한다  



위 김영관 선배님은 이미 각 신문에 투고및 인터뷰 그리고 방송 출연등으로 "과거 없는 오늘이 없고 오늘이 없는 미래도 없다"란 구호아래 지난 역사에서 배워 알고 앞날을 대비(對備)해야 한다 했으며 또한 우리 철우회보나 각 메스컴에 보도되어 잘 알려져 있으나 새삼 젊어서 일찍 우리나라 광복군으로 투신한 독립투사 이시다



또한 우리나라 발전의 동맥인 철도에도 많은 기여와 공적이 있는 분이시다 내가 이분을 알게된 시기와 동기는 1957년도 당시 내가 용산 교통부 경리국 재정과에 근무할 때 우연하게 경리국에 들어와 만나게 되었다 입사 당초는 이 분에 대한 존재를 몰랐으나 그후 알고보니 항일 투사임을 알았고 대단하신 분임을 알게 되었으며 존경의 대상이었다



더구나  이 분은 나와같은 고등학교 졸업 동기생의 친 형님인 것을 안 나는 그때부터 좀더 가까히 친밀하게 대하게 되었다 이 분을 겪어보니 말없이 실천(實踐)하는 조신하고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로 근무에 성실하였다 저런분이 어덯게 광복군 이었나 하고 좀 의아(疑訝)했었다 그리고 철도 퇴직자 모임인 철우회 산하 계통 분야별로 매년 있는 경우회 모임에도 빠짐없이 꼭 참석 하는 분이셨다



그리고 이 분의 생활신조는 늘 아직 남북통일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지금도 계속하여 그 일에 종사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곳이 바로 이 전쟁기념 사업회 회장이시다 또한 90이  가까와도 평소 독립투혼의 의지와 기백(氣魄)으로 살고있어 그런지 아직도 늙은티 없이 꼿꼿한 자세로 정정하고 젊게 보이는 분이시다



또한 이분의 경력을 보면 다채롭다 1965.9.15일 안춘생 초대 회장을 선두로 500여명으로 창립 발족한 한국광복군 동지회 제12대 회장으로 선임되어 지난 2011.5.27자로 취임하여 우리민족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받은 임시정부 국군으로 조국 광복을 위해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며 나라사랑 정신과 애국심 함양 그리고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 함이 그의 신조(信條)이자 목표이었다  



또한 독립 투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철도 발전에도 공헌한 바가 크신 분으로 1973.8.21 경리국장으로 승진되고 다음은 1974.2.22 기획관리실장(2회) 다시 두번째로 경리국장으로 다음은 자재국장을 거친후 이번에는 1981.1.5자로 철도청 차장으로 대 영전이 되었으니 이런 승승장구(昇昇長久)한 분이 또 있겠는가 특히 그중 가장 긴 년수로 경리국장을 역임했으니 이는 왕년에 선린상고를 졸업한 소치이며 실로 경리분야의 달인(達人)이 분명했다



또한 당초 광복군은 1940.9.17 중국 중경(重慶)에서 창립하여 광복군(光復軍)이란 표지(票識)로 지(誌)를 창간 하였으나 일시 중지 하다가 다시 70년만에 작년 2011.9부터 봄.여름.가을.겨울 계간(季刊)으로 책자(誌)로 활동사(活動史)를 발간하고 있다 (현재 5호까지 발행) 이 광복군 지에는 매호마다 회장님의 권두언.시론.논단.초점등 말고도 각계 각층의 저명한 인사들의 글이 쇄도 하는등 이에 관련되는 독립투사에 대한 글과 사진 기타등 다양한 역사자료등이 수록되어 있었다 (별지 책자 참조)...  



그리고  김회장님은 철도청 차장을 끝으로 이에 철도의 부수사업인 홍익회(弘益會) 회장으로 근무(1982~1986)할 당시 못다한 "한국 광복군 선언문비"를 천안에 있는 독립기념관에 건립(建立) 했다하니 얼마나 독립정신이 투철 한가를 알수가 있었다.



이야기 한지도 2시간이 다가 왔다 끝으로 회원들에게 할 말이 없느냐 하니 회장님은 앞으로 더욱 철도의 무궁한 발전과 회원들의 건강과 가정에 행운이 있기를 기원 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올 때 지난달 (2012.9.17) 한국광복군 창군 제72주년 기념식및 학술 강연회가 백범 기념관에서 있었다며 그때 나눠 준 기념품과 책자를  받아들고 귀가길에 나섰다





끝으로 이런분 들에 비해 나는 무엇인가... 겨우 1945.8.15 해방직전 까지도 우리나라 태극기를 모르고 살다가 졸업직전 같은반 독립투사의 손자로 부터 학교 칠판에 그린 태극기를 보고 처음 알았으니 그 만큼 무지 목매했던 나를 자책하며 오직 독립 투쟁에 앞장 선 애국지사 선조님들에게 그저 죄송한 마음으로 다가서며 그저 사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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