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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한민족 뿌리’ 날조 민낯을 보여주다 HIT : 658


日, ‘한민족 뿌리’ 날조 민낯을 보여주다
단군•광개토대왕비 왜곡 증명 논문 잇단 발표
일제 사학자들 “단군은 일본 조상신의 동생” 주장까지
입력 2014-10-02 20:06:22,  세계일보

일제 강점기 일본 학자들의 한국사 연구는 조작과 왜곡이 또 다른 조작과 왜곡을 낳은 전형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것은 특히 고대사에 집중됐다. 우리 민족의 시원(始原)을 조작, 왜곡함으로써 한국사 전체를 일제의 논리대로 난도질했다. 단군은 허구의 인물로 부정됐고, 광개토대왕릉비는 왜(倭)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거짓말의 근거가 됐다. 이때의 굴곡진 한국사는 지금까지도 바로잡히지 않아 역사분쟁의 중심에 서 있다. 일제의 한국사 왜곡 행태를 보여주는 논문이 최근 잇달아 발표돼 주목된다.


중국 지린성에 있는 광개토대왕릉비는 대제국을 건설한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린 것이지만, 일제는 비문을 훼손해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활용하는 엉뚱한 짓을 벌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단군은 일본 조상신의 동생(?)”

우석대 조법종 교수는 2일 동북아역사재단 주최로 열린 학술대회에서 일제 사학자들의 단군 부정 작업을 밝히고, 비판했다. 작업은 두 가지 흐름으로 진행됐다. 하나는 단군을 허구적•전설적 존재로 만드는 것이었다.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이 ‘단군 창안자’라는 주장에서부터 주몽의 아버지인 해모수가 곧 단군이며 이들은 만주의 인물이기 때문에 한민족과는 상관없다는 억지가 등장했다. 이런 내용을 학교에서 교육해 확산하는 정책이 시행되었음은 물론이다.

일본이 조상신으로 숭배하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의 동생 ‘스사노 노미코토’가 단군이라고 주장하는 왜곡론은 또 다른 흐름이었다. 조 교수는 “한국이 신화시대부터 일본에 종속되었음을 강조하며 ‘일선동조•동근론’(日鮮同祖•同根論•한국과 일본이 같은 조상, 뿌리를 가졌다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분석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신채호는 “단군은 신수두를 개창한 영웅적인 대추장이며 종교적으로는 천신인 광명신(光明神)을 섬기는 존재였다”고 맞섰다. 광복 이후에는 환웅과 웅녀의 결합으로 단군이 태어나는 신화 구조를 신석기 문화와 청동기 문화의 융합으로 해석하는 고고인류학적 관점이 제기됐다.

비문 훼손 부분 동양고고학연구소 박노희 연구원이 광개토대왕릉비의 훼손 부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형구 교수 제공
◆“광개토대왕릉비는 임나일본부의 근거”(?)

일본은 광개토대왕릉비를 ‘최고의 근본자료’로 여긴다. 대제국을 건설한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린 비석을 엉뚱하게 일본이 애지중지하는 것은 ‘임나일본부설’(고대 일본이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했다는 주장)의 근거로 보기 때문이다. 물론 비석을 훼손해 마음대로 해석한 결과다. 선문대 이형구 석좌교수, 동양고고학연구소 박노희 연구원은 지난달 29일 열린 ‘광개토대왕릉비 건립 16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비문 왜곡 과정을 소상하게 밝혔다.

비석에는 광개토대왕이 신라에 침범한 왜구를 격퇴한 내용이 나온다. 일제는 이중 ‘왜만왜궤성’(倭滿倭潰城)에 주목했다. “신라성에 왜가 가득했다. 왜는 성을 무너뜨렸다”는 뜻이어서 고대 일본이 신라를 지배했다는 근거가 된다는 것. 1883년 일본 육군의 사카와 가게아키 중위가 만든 비석의 탁본을 분석한 결과였다. 문제는 비문 자체가 조작된 것이라는 점이다. 이 교수, 박 연구원은 1909년 상하이 유정서국본 이래 여러 탁본을 분석한 결과 ‘왜만왜궤성’이 아니라 ‘왜구대궤성’(倭寇大潰城)으로 읽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라성을 점거한 왜를 크게 무너뜨렸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왜가 신라를 점령했다는 따위의 해석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이 교수는 “문제가 된 비석의 부분에 석회를 발라 시간이 지나면서 비석의 글자체가 계속 변화하고 흐릿해졌다”이라며 “사카와 중위의 탁본은 서법에 운기가 전혀 없는 인공적 ‘도안문자’에서 책상에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최근 중국 지린성에서 비석을 살펴본 결과 글자를 끌질 한 흔적을 찾아냈다. 일제가 비문 기록의 ‘왜’를 주어로 삼아 해석해 마치 왜의 전적인 양 조작했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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